부여 가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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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여 가림성은 현재 성흥산성으로 불리며, 백제 시대에 금강 하류 일대를 관측하는 요충지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위사좌평 백가가 쌓았으며, 백제 동성왕을 시해하는 반란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김유신과 천관녀 사이에서 태어난 김시득 장군이 당나라와의 기벌포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고려 시대 이후 임천군으로 유지되다가 부여군에 통합되었다. 성벽은 테뫼식으로 축조되었으며, 발굴 조사를 통해 백제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성벽 축조 양식이 확인되었다. 성흥산성에는 느티나무와 임천 충혼제가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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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가림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부여 가림성 |
로마자 표기 | Buyeo Garimseong |
영문 표기 | Garimseong Fortress, Buyeo |
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4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 (군사리) |
시대 | 백제 |
면적 | 51,398m2 |
추가 정보 | |
문화재청 ID | 13,00040000,34 |
2. 역사
가림성은 백제 시대 부여 지역의 옛 지명으로,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2]
2. 1. 백제 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따르면,[2] 가림성은 가림군 지역에 있었다. 부소산성과 부여군(백제 때 지명은 "사비")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이곳은, 백제 도성들(부여 및 공주)을 따라 흐르는 금강 하류의 중요한 지점으로 금강 하류 일대를 관측할 수 있다. 가림성은 백제 시대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와 당시 지명을 알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도성을 보호하는 거점산성으로 알려져 있다.[3]《삼국사기》에 따르면, 고위직인 위사좌평이 이 성을 담당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성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기록에 따르면, 이 성을 쌓은 위사좌평 백가가 성을 쌓은 후 동성왕이 이곳을 지키게 하자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동성왕을 죽였고, 무령왕이 이 반란을 진압했다.[4]
2. 2. 통일신라 시대
통일신라 시대에는 김유신과 천관녀 사이에 태어난 김시득 장군이 가림성에서 활동하며 기벌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전해진다.[1]2. 3. 고려 시대 이후
임천은 고려, 조선 시대에 임천군으로 유지되다가 부여군과 통합되어 현재는 부여군 임천면으로 편입되었다. 가림이라는 지명은 임천초등학교 가림분교 등의 이름에도 일부 사용되었다.[1]3. 지리적 특징
가림성은 부소산성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성흥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백제 도성인 부여(백제 때 지명은 "사비")와 공주를 따라 흐르는 금강 하류의 요충지로, 금강 하류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2] 백제 시대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와 당시 지명을 알 수 있는 곳이며,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도성을 보호하는 거점산성이었다.[3]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위직인 위사좌평이 이 성을 담당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가림성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동성왕이 백가에게 이 성을 지키게 하자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동성왕을 살해했고, 무령왕이 이 반란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있다.[4]
성흥산성[1] 동남쪽에는 대조사가 있는데, 이곳에는 고려 초기 천연암석을 이용하여 만든 높이 10m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이 있다. 대조사는 백제가 공주에서 부여로 수도를 옮기는 천도에 관한 설화가 있는 곳이다.
3. 1. 성벽과 구조
가림성은 산봉우리를 따라 원형으로 성벽을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은 일부 화강암을 사용하고, 동쪽 성벽 등 일부는 흙으로 쌓았다. 2008년 1월 현재 확인된 성의 둘레는 1,500m, 성벽 높이는 3~4m이다. 성벽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을 파내 석축 안쪽에 쌓아, 자연스럽게 안쪽에 호(垓字)가 만들어졌다.[4]남문지에는 성루나 성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초석은 약 4m 넓이로 그대로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우물 3개와 군창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초석 등이 남아 있다.[1]
4. 발굴 조사
1996년 동‧남문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2011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2011년, 2015년, 2016년, 2017년에는 가림성의 동성벽, 북성벽, 내부 일부 평탄지 등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동‧남문지 축조 형태, 백제 시대 성벽의 축성법,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개축한 성벽 흔적 등이 확인되었다.[3]
그동안 가림성은 동·북성벽, 문지 등에 대한 조사를 주로 하였는데, 2018년에는 사비도성의 왕궁지인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이 조망되는 가림성 내부의 산 정상부를 조사하여 건물지를 확인했다.[3]
2019년 9월부터 북성벽 내측부를 조사하여 집수정과 배수시설을 확인하였다.[5]
5. 문화
성흥산성 남문 입구의 큰 느티나무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SBS 드라마 서동요 외에도 KBS 드라마 '''대왕세종''',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 KBS 드라마 '''천추태후''', tvN 드라마 '''환혼''' 등에서 촬영 장소로 활용되었다.[1]
임천 충혼제는 매년 4월 말 이틀간 성흥산성에서 임천면 번영회 주최로 열리는 향토 제례 행사이다.[1] 나당연합군에 대항하여 목숨을 바친 백제 무명 장졸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1979년에 시작되었다. 첫날에는 성흥산성까지 연등행렬과 봉화제가, 이튿날에는 역사문화행렬, 개막식, 충혼제, 국악공연, 줄다리기, 게이트볼 대회, 노래자랑 등이 열린다.
2024년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10월 5일 성흥산성 성흥사 사당에서 임천충혼제가 거행되었으며, 초헌관은 군수(또는 군의회의장)가 진혼 제례를 올렸다. 가림성에서는 기벌포(장항 금강입구), 논산 황산벌(계백장군 오천결사대가 신라와 싸운곳), 계룡산, 백마강으로 둘러싸인 부여(사비성 부소산)가 조망된다.
5. 1. 가림성 느티나무
성흥산성 남문 입구의 큰 느티나무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SBS 드라마 서동요에서 주인공 서동과 선화공주가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1] KBS 드라마 '''대왕세종'''의 마지막 편도 이곳에서 촬영되었으며, 신윤복과 김홍도를 중심으로 그린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 고려 전기를 배경으로 하는 KBS 드라마 '''천추태후''', 판타지 사극인 tvN 드라마 '''환혼'''에서도 촬영 장소로 활용되었다.5. 2. 임천 충혼제
임천 충혼제는 매년 4월 말 이틀간 성흥산성[1]에서 임천면 번영회 주최로 열리는 향토 제례 행사이다. 나당연합군에 대항하여 목숨을 바친 백제 무명 장졸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1979년에 시작되었다.매년 4월 말에 이틀간 열리는데, 첫날에는 성흥산성[1]까지 연등행렬이 진행되고 산성 봉화대에서 봉화제가 올려진다. 이튿날 오전에는 역사문화행렬, 개막식, 충혼제가 열리고, 오후에는 국악공연, 줄다리기, 게이트볼 대회, 노래자랑 등 부대행사가 펼쳐진다.
2024년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10월 5일 성흥산성 성흥사 사당에서 임천충혼제가 거행되었으며, 초헌관은 군수(또는 군의회의장)가 진혼 제례를 올렸다. 가림성에서는 멀리 기벌포(장항 금강입구), 동으로 논산 황산벌(계백장군 오천결사대가 신라와 싸운곳)과 계룡산, 백마강으로 둘러싸인 부여(사비성 부소산)가 조망된다.
6. 같이 보기
참조
[1]
관보
문화재청고시제2011-116호(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http://gwanbo.mois.g[...]
문화재청
2011-07-28
[2]
서적
백제 산성의 이해
(재)백제문화개발연구원
2004-07-30
[3]
웹인용
백제 후기 수도 사비도성 방어를 담당했던 부여 가림성(사적 제4호) 내부 발굴조사 착수
https://www.cha.go.k[...]
2018-08-27
[4]
웹인용
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 사이트 - 성흥산성
http://www.visitkore[...]
2008-01-18
[5]
웹인용
부여 가림성에서 통일신라와 조선 시대 집수정(우물) 2기 확인
https://www.cha.go.k[...]
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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